내가 아는 한 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가 됐다. 결혼 때문에 이사를 가게 돼 일을 그만뒀다가 재취업에 나섰다. 경력단절의 벽이 높았는지 잘 되지 않아 신발 가게 파트타이머로 들어갔다. 의기소침해 있을 줄 알았더니 하는 말이 “신발을 사러 온 손님들한테요, 맘에 드는 걸 같이 찾아서 신겨주고, 그걸 사 가면 기분이 진짜 좋아요. 재밌어요.”였다.
통통 구르듯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. 그 이후로 자신의 하루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동생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. 그것은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며 직업에 자존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의 평범한 위엄이 담긴 모습이었다.
어릴 적 엄마는 몸이 약했는데도 네 자녀를 낳아 기르느라 병원을 자주 오갔다. 엄마 표현대로라면 몸이 종잇장처럼 투명해지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고 한다.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엄마는 기를 쓰고 밤낮으로 주택관리사 시험을 준비해 자격증을 땄고 맞벌이 생활을 시작했다. 덕분에 네 자녀는 모두 학업을 마치고 제 몸 건사하면서 살게 됐다. 이제 60 중반이 된 엄마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.
“그렇게 너희 넷 키우느라 찢어지게 힘들었을 때도 은행에 기어코 찾아가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3만 원씩 냈어.”
그 말을 하는 순간 엄마 눈에서 반짝 빛이 났다.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살았다는 엄마의 자존심. 남에게 빚을 지기도 했지만 결국 다 갚아냈다는 자부심. 그런 것이,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어떻게 살지 결정한 자의 평범한 위엄이지 않을까?
이제 우리는 다 알고 있다. 평범하게 사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.
평범함의 위엄을 보여주면서 살고 싶다.
정민지, 「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」, 북라이프, 2019, p.165